어느 애주가의 고백 (다니엘 슈라이버)
본 도서는 독일 출신의 비평가이자 기자 출신인 다니엘 슈라이버가 어떤 과정을 거쳐 알코올에 중독되었으며 술로 인해 하루하루가 피폐해져 가는 일상과 술이 어떻게 정신과 영혼을 점점 더 황폐화시켜 가는지 소개하고 있으며, 또한 알코올 의존증을 어떠한 방법으로 극복할 수 있는지 그리하여 누구나 술 없이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음을 정리하여 서술한 책이다.
◯ 나는 언제부터 술을 마셨을까?
어릴 적 팀 로빈스와 모건 프리먼이 출연한 영화 “쇼생크 탈출”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영화는 보는 내내 잠시도 눈을 뗄 수 없는 강렬함과 온몸을 짜릿하게 하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 주었다.. 아하 이래서 영화를 보는구나.
그때부터 난 액션물이나 오락물보다는 보고 무언가를 느낄 수 있는 감동을 주는 영화를 찾아봤던 것 같다. 나에게 있어 술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집에서 혼자 영화를 보면서 마시는 맥주는 영화에 집중할 수 있는 몰입도를 한층 높여 주었고, 심지어 등장하는 인물들의 감정이입에도 도움을 주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문제가 생겼다. 마시는 술의 주종 변화와 양이 그것이었다. 1캔이 2캔 되고 2캔이 3캔 4캔으로, 피쳐 맥주로, 병 맥주로, 소주로...
이때부터 흔히 말하는 혼술의 시작이다.
학창 시절 혼술로 다져진 나의 주량은 취업 이후 각종 회식과 모임을 다니며 남다른 실력 발휘를 하게 된다. 일주일에 2~3번은 회식이며 회식이 없는 날이면 온갖 핑계를 대며 저녁 식사 자리에 술병이 올라오게 된다.
힘든 일을 마무리하고 한잔, 기분이 좋지 않아 한잔, 비 오니깐 한잔, 울적하니깐 한잔, 불금이니깐 영화 보며 치맥 한잔, 운동했으니깐 목말라서 시원하게 소맥 한잔, 심지어 기분이 좋아도 한잔, 여기에 친구와 주변 사람들의 기분도 얼마든지 가져다 붙여 한잔 넘어 두 잔의 빌미가 된다.
이렇듯 술이란 마실 구실과 핑계는 무궁무진한듯하다.
이러다 보면 일주일에 8일 술 마신다는 것이 불가능한 일도 아닌 듯하다.
◯ 술이 가지고 있는 장·단점
술에는 많은 장점이 있다. 술이란 함께 하면 좋은 사람과의 끈끈한 우정과 애정을 확인할 수 있으며, 조직사회에서 상사 동료들과의 오해와 갈등 관계에 도움이 되며, 어색하고 서먹한 사이가 술잔의 부딪침 소리와 함께 대화의 물꼬를 트며 금방 화기애애 해질 수 있다.
술은 언제나 슬프거나 지루하거나 화난 사람들에게 출구가 되어 줬다.
가혹한 삶에서 스스로를 보호하고, 더 잘 견딜 수 있게 했으며,
불안한 미래와 마주 할 수 있는 힘을 줬다. 망각 속으로의 탈출은 인간의 본능이다.
반면 술에는 어마어마한 단점이 있다. 단 한 잔의 술이라 해도 정신적 건강이 아닌 신체적 건강에는 전혀 도움 될 일 없으며 아침에 느끼는 숙취와 피로감은 하루 종일 우리를 힘들게 한다. 또한 과도한 음주는 자제력을 잃고 크고 작은 실수를 저지르게 될 뿐만 아니라 블랙아웃(blackout)은 스스로를 극도로 불안하게 만들고 심할 경우 자괴감마저 들게 한다.
과음 행복 패턴이 한 번 자리 잡고 나면,
아무리 일정 기간 술을 끊거나 적당히 마시더라도
결국 과거의 음주 습관으로 돌아가곤 한다는 사실이 증명되었다.
도서에서는 술을 마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본인이 알코올 의존증이나 중독증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알코올 중독자는 나와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이며 내가 먹는 술은 어디까지나 술을 즐기는 수준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다르게 생각해 왔다. 술을 먹고 잦은 실수를 하거나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은 술을 먹을 자격이 없다고 철칙처럼 여겨왔다. 때문에, 난 최대한 과음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면 하루에 먹는 술의 양은 소주 1병 맥주 1병 정도이다. 다음날에도 숙취로 힘들거나 괴로워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다른 사람과 다르게 생각하는 주된 이유는 술의 양이 아닌 술을 마시는 횟수이다. 책에서도 언급되었듯이 적은 양이라도 술을 규칙적으로 마시면 두뇌 속 세포의 생화학적 구조가 지속적으로 변화한다고 한다. 그러한 이유에 나 스스로는 술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끼는 안도감이나 질병에 대한 수치심을 느끼기보다는 나에게 있는 문제점이 무엇인지 객관적으로 짚어 보고 술이 없이도 얼마든지 행복감을 느낄 수 있음을 경험하고 싶은 심정이다.
습관적 음주는 한 번 배우면 잊어버리지 않는 자전거 타는 법과 유사하다.
술 습관은 강력한 신경 연결망으로 두뇌에 형성된다.
◯ 그저 오늘 하루만...
나는 담배도 피운다. 참 여러 가지 골고루, 하지 말하는 것만 골라한다.. 과거에 ‘스탑 스모킹’(알렌 카 지음)이라는 책을 읽고 3개월가량 금연을 한 적이 있다. 과거형으로 표현했다는 것은 아직 니코틴이라는 화학물질에서 헤어나지 못했다는 말이다. 술과 담배는 똑같은 중독 물질이다. 이런 생각을 해본다. 딱 하루만 참아보라면 담배보다는 술이 훨씬 수월하지 않을까? (그렇다고 술은 끊어도 담배는 못 끊는다는 식의 생각은 하고 싶지 않으며, 오히려 둘 중에 하나와 이별을 해야 한다면 담배를 선택하고 싶은 심정이다.)
담배이든 술이든 라이터를 켜고 술잔을 드는 이유는 우리의 마음에서부터 비롯되지 않나 싶다. 직장, 돈, 가정, 주변에서 생길 수 있는 크고 작은 미래에 대한 걱정과 고민들 말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 해결할 수 없는 만성적인 걱정과 두려움들조차 그저 내일의 문제일 뿐 오늘은 상관이 없으며, 언젠가는 대처하고 해결해야 하겠지만 오늘 해결해야 할 문제는 아닐 것이다. 오늘은 오늘을 살아가는 것만이 중요하다고 마음을 다잡아 본다.
술에서 기인된 감정이 바닥을 기어 다니고 삶 자체를 훼손하고 있을 때 금주는 시작된다.
일종의 마지막 보호 본능이 작동된 셈이다. 하지만 그 본능을 누룰만큼 술의 힘은 더 강력하다.
그래서 ‘Just for today’ 그저 오늘 하루만이라는 생각으로 첫발을 떼어 보려 한다. 물론 본능을 누를 만큼 술의 힘이 어마어마하게 강력하여 여러 번 실패를 경험할지라도 이 질병으로부터 살아남으려면 그것에 대해 부끄러워하지 않는 용기가 필요할 것이다. 이 책의 부제인 ‘술 취하지 않는 행복’이 무엇인지 이 책을 계기로 단단히 느껴보기를 기대해 본다.
2022. 10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