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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통신

어느덧 故 신해철 10주기, 신해철 그의 삶과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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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연히 고 신해철 추모 10주기 특집으로 방송한 ‘불후의 명곡’을 보게 되었는데요. 방송 도중 10년 전 홍경민과 함께 노래를 불렀던 고 신해철의 아들이 어느덧 훌쩍 자라 건강한 청년으로 출연하여 화제가 되었죠.
고 신해철 추모 10주기를 많아 불후의 명곡을 포함하여 유 퀴즈 온더 블록, MBC ‘우리형 신해철’ 등의 방송이 이어지고 있는데요.
고등학교 시절, 수학 공부할 때면 어김없이 듣던 음악, 테이프가 늘어지도록 무한 반복으로 들었던 NEXT 앨범들...
오늘은 아련하지만, 기억은 아직도 선명한... 고인 신해철에 대해서 포스팅 할까 합니다.
 
 
 
신해철은 단순히 가수를 넘어선, 대한민국 대중 음악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라 저는 생각합니다.
그의 독창적인 음악성과 철학적인 가사들은 90년대와 2000년대를 관통하며 수많은 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고 생각하는데요.
본명은 신해철, 1968년 5월 6일 서울에서 태어났죠. 어린 시절부터 음악에 대한 열정을 품고 자라난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서강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중퇴)하게 됩니다. 당시 대학가에서 인문학과 철학에 대한 열풍이 불었고, 신해철은 이 환경 속에서 깊이 있는 생각을 기반으로 한 음악적 색채를 더해가죠.
 
 

신해철의  음악적  여정,  밴드와  솔로  활동

신해철의 음악 여정은 1988년 MBC 대학가요제를 통해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그는 당시 밴드 '무한궤도'로 참가해 '그대에게'라는 곡으로 대상을 수상하면서 대중들에게 첫선을 보였죠.
이 곡은 지금까지도 그를 상징하는 대표 곡 중 하나로 남아 있으며 응원가에서 빠지지 않는 곡이죠.
이후 무한궤도의 해체로 그는 솔로로 전향했고, 그만의 음악 세계를 본격적으로 구축하게 됩니다.
 
1990년대 중반, 신해철은 록 밴드 '넥스트(N.EX.T)'를 결성하여 본격적인 록 음악의 길을 걸었습니다.
넥스트는 실험적인 음악과 무겁고도 철학적인 가사로 주목받았고, "Lazenca""Here, I Stand for You" 같은 곡들은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고 있죠. 그는 또한 전자음악에 깊은 관심을 보이며 '모노크롬', '신해철과 이승환 프로젝트 앨범' 등 다양한 장르의 앨범을 발매하며 대중음악의 경계를 허물었습니다.
 
신해철의 음악 여정에서 밴드와 솔로 활동은 서로 보완적인 관계였습니다.
넥스트로서 신해철은 록과 메탈을 기반으로 한 강렬한 음악을 선보였고, 솔로로서는 감성적이고 철학적인 메시지를 담은 다양한 장르를 실험했죠. 밴드 활동을 통해 집단적 에너지를 발산하고, 솔로 활동을 통해 개인적인 감성과 철학을 풀어낸 것이 신해철 음악의 큰 특징입니다.
그는 항상 새로운 것을 추구했고, 음악을 통해 대중과 소통하면서도 자신만의 철학을 잃지 않았습니다. 밴드와 솔로 활동에서 모두 성공을 거두며 대한민국 대중음악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한 신해철은, 그가 남긴 음악적 유산을 통해 지금까지도 수많은 뮤지션과 팬들에게 인정받고 있죠.
 

 
 

음악과  팬,  그리고  그가  남긴  유산

내가 기억하는 신해철은 단지 음악을 만들로 노래를 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대중과 소통하며 그들로 하여금 생각을 하게 만들었고, 사회적, 정치적 이슈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내던 아티스트였죠. 그의 가사는 사랑과 청춘의 이야기에서부터 정치적 메시지, 그리고 인류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까지 아우르며 폭넓은 주제를 다루었습니다. 이 때문에 그는 팬들에게 단순한 가수 이상의 존재였습니다.
그의 음악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었고, 특히 젊은 세대에게는 ‘언제나 생각할 것’을 요구하는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또한 그가 시도한 실험적인 음악과 장르의 융합은 한국 대중음악의 다양성을 확장하는 데 크나큰 영향력을 끼쳤죠. 그가 넥스트를 통해 보여준 록의 무게감, 그리고 솔로 활동을 통해 탐구한 전자음악과 실험음악은 후배 뮤지션들에게도 큰 영감을 주었을 것입니다.
또한, 그는 대중음악의 경계를 넓히면서도 자신의 음악적 신념을 굽히지 않았던 인물로, 상업적인 성공에 연연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그 마인드는 오늘날까지도 많은 아티스트들에게 롤모델이 되고 있죠.
 
 

그의  안타까운  죽음과  그  이후

그러나 신해철은 2014년 10월 27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당시 그는 장 협착증 수술을 받았고, 수술 후 발생한 합병증으로 인한 심정지로 결국 유명을 달리하게 되었죠. 그의 죽음은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주었고, 팬들은 그의 갑작스러운 떠남을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워했습니다. 저 또한 뉴스로 접한 그의 죽음 소식을 들고 '이제 신해철 노래를 못 듣는 건가'라며 죽음의 허망함에 한동안 울적했으니까요. 더욱이 음악적 활동도 왕성히 이어가던 시기였기에 더욱 안타까웠던 기억이 납니다.
이후 법적 분쟁이 이어졌고, 그 과정에서 의료 과실이 인정되면서 그의 죽음은 대한민국 의료 시스템에 대한 논의를 촉발시키기도 했습니다.
 
 

신해철의  가족과  최근  이야기

서론에서 말씀드렸듯이 그의 아들이 최근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과 '불후의 명곡'에 출연하면서 화제를 모았는데요. 신해철의 아들은 시간이 흐르고 성장하면서 아빠는 어떤 사람이었을지 궁금하고, 넷이 있었던 기억이 그리워서 아빠를 인터넷에 검색했다며, 나무위키도 읽고, 기사도 읽어봤는데 '나는 왜 아빠를 인터넷에 검색해서 알아야 하지?'라는 생각에 억울하더라"라는 말과 함께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했습니다.
 
특히 '불후의 명곡'에서는 아버지의 노래를 직접 부르며 신해철이 남긴 음악적 감동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했죠. 또한,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는 아버지와의 추억을 나누며 가족으로서의 신해철을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출연은 팬들에게 큰 감동을 선사했으며, 신해철이 가족에게 남긴 사랑과 정신적 유산을 다시금 조명하게 했습니다.
 
 

영원히  남을  신해철의  음악

청춘의 열정과 꿈, 자유를 담은 노래 ‘그대에게  / 도시 생활의 고독과 현대 사회의 소외된 감정을 노래한 곡 ‘도시인’  /이별의 아픔과 그리움을 서정적으로 풀어낸 발라드 곡 ‘슬픈 표정하지 말아요’  /부드러운 재즈풍의 편곡과 세련된 분위기가 특징인 ‘재즈카페’  /사회적 메시지와 강렬한 곡 사운드, 희망적인 가사가 특징인 ‘Here, I Stand for You’  /청춘의 순수함과 그 안에 담긴 아픔 그리고 노란색 악보와 통기타를 생각나게 하는 ‘날아라 병아리  /인간의 삶과 꿈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는 곡 ‘민물장어의 꿈  /일상의 소소함 속에서 행복을 찾으려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곡 ‘일상으로의 초대  /미래에 대한 희망과 불안을 동시에 담은 서사적인 록곡 ‘해에게서 소년에게  /사랑에 대한 고민과 고뇌를 담안낸 곡 ‘힘겨워하는 연인들을 위해’  /아버지에 대한  반항심에 갇혀 있던 시절,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해주었던 곡 ‘아버지와 나’  이외에도 나의 성장기에 신해철이 나에게 영향을 주었던 곡은 너무나도 많습니다.
 
신해철의 음악과 정신은 그의 팬들, 그리고 후배 아티스트들에게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그는 대한민국 음악계에 혁신을 가져왔고, 자신의 철학을 음악으로 표현하며 세상과 소통했던 대한민국의 가장 위대한 아티스트였습니다.
비록 그가 우리 곁을 떠났지만, 그의 음악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과 위로를 주고 있습니다.
'마왕'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대중의 사랑을 받았던 신해철, 그의 음악과 철학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대한민국 음악사에서 빛날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 지독한 짝사랑을 경험했던 시절의 '인형의 기사' 와 나의 정체성에 마구마구 질문하던 때의 '나에게 쓰는 편지'를 빠트렸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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