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도서는 김병훈 사진작가가 세상의 풍경을 렌즈 속에 담기 시작한 후로 걷고, 걷고, 걷고... 또 걸으면서 몇 년 동안 돌아다니는 것에 취해 도시 곳곳을 하염없이 걸으며 공간과 공간 속의 사람들을 만나 렌즈에 담은 사진들을 수록한 책이다. 사진만으로는 부족한 부분을 짧은 에세이 글이 돕고 글이 부족한 부분은 사진이 돕기를 바라면서 사진과 글에 담긴 감정과 생각을 담은 사진 에세이이다.
속이 시끄러울 때
“다른 사람이 계획한 시간으로부터 탈출했다.
사실 일주일 전부터 머뭇거리다 겨우 도망을 쳤다.
일부러 휴대폰은 집에 두고 나오고, 처음 보는 번호의 버스를 타고
걸어 보지 않은 거리의 버스 정류장에서 내렸다.
볕이 잘 드는 카페에 들어가 드립 커피와 여러 종류의 케이크를 시켜 놓고
가게에서 가장 큰 창가에 앉아 거리를 구경하며 멍하니 시간을 보냈다.
한참을 앉아 있으니 마침내 시끄러웠던 머릿속이 조용해졌다.”
비가 와서 그래요
“맞을 만한 비가 내렸다. 비 비린내와 젖은 흙냄새가 진동한다.
내가 좋아하는 비 내리는 모습은 처음 내린 비가 바닥에 고이고,
뒤늦게 내리는 비가 그 수면에 부딪혀 파문을 일으킬 때다.
어쩔 수 없이 맞아야 하는 비라 좋은 건가?
아니면 팽팽했던 일과를 비라는 놈한테 떠넘기고는
잠시나마 느슨하게 즐길 수 있어 좋은 건가?”
아주 두꺼운 창으로 비 보기
비 오는 날, 비를 피해 들어선 카페 창 앞에서 나를 따라 들어온 비와 함께...
◯ 마음의 병 공황장애
치열한 취업전선에서 내려왔을 때쯤 나에게는 오랫동안 힘들고 버거웠던 마음의 병이 있었다. 냉담하고 냉혹한 현실을 마주하며 절벽 아래 서 있는 듯한 미래의 불안을 안고 하루하루를 버티며 견뎌온 시간 뒤에 찾아온 이 병은 그 시간 전의 힘듦 그 이상이었다.
예고 없이 수시로 찾아오는 호흡 곤란과 식은땀을 동반하는 머리끝으로 전해지는 싸늘함은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은 공포를 느끼게 했다. 사실 그때의 고통과 괴로움을 글로 표현한다는 것은 나의 언어적 한계를 느끼기에, 이러한 이유 때문일까? 이 병의 이름이 ‘공황장애’라는 것을 알기까지는 반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 뷰파이더로 바라보는 다른 세상
나에게 있어 사진은 이 장애를 극복하기 위한, 아니 어떻게든 살고자 하는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한 달 월급을 모두 털어 카메라를 구입하여, 주말이면 정해 놓은 곳 없이 이곳, 저곳을 정신없이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걷고 걸으며 생각에 잠겨 있을 때는 호흡 곤란은 찾아오지 않았으며, 사진을 찍느라 집중하는 시간에는 공포와 마주하지 않았고, 오히려 뷰파이더를 통해 바라보는 세상과 풍경과 사람들은 내가 숨 쉬고 있는 현실의 그것과는 다르게 느껴져 마음이 고요하고 편안했다. 그렇게 사진과 1~2년을 함께 보낸 결과 다행히 빌어먹을 장애는 더 이상 나와는 상관없는 것이 되었다.
◯ 나의 친구 카메라
그래서 나는 사진이 좋다. 찰칵하며 소리를 내는 셔터음 소리가 좋다. 찍은 사진을 보며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그 시간이 너무 좋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바쁘게 아이를 키우면서 나에게 이런 고마움을 준 카메라와 렌즈는 누구와의 관심도 받지 못한 채 지금은 서재 저 한구석에 처량히 처박혀 있다. 뽀얀 먼지를 하얗게 뒤집어쓴 채 말이다.
날씨도 좋고 바람도 적당한 오늘 아이들과 함께 카메라를 둘러메고 집을 나서보려 한다. 나의 아이에게 고맙고 감사한 나의 친구를 소개해 주고 싶다.
사진에 찍혀 있는 시간
아름다움이 아주 크면 슬픔이 된다.
하늘, 바다, 산...
사랑하는 사람과 나누고 싶은 드넓은 아름다음들,
누군과 함께 하면 기쁨이 되지만,
홀로 누리면 때론 슬픔이 되기도 하는
그러한 기쁨과 슬픔, 혹은 보이지 않는 시간까지도
카메라에 담아보고 싶은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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